I Like/BOOK2009. 1. 7. 09:39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나님의 이삭과 리브가 결혼시키기(래비 재커라이어스 지음)

외형적인 복음에 대한 저항을 해체해 보면 성경의 진위에 저항하던 사람의 겉모습 뒤에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젊은이들, 특히 충동적인 로맨스와 사랑을 겪었던 이들이 과연 한번이라도 진실한 사랑을 했던 적이 있었는지 묻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문화들은 각기 다른 시각에서 결혼을 본다. 만약 우리가 조심하지 않는다면 결혼이란 각 문화의 틀 안에서 사회가 고안한 제도이니 우리가 원하는 대로 처리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보다 사실에 반하는 것은 없다. 결혼은 하나님의 생각이고 오직 하나님만이 결혼의 본 의미를 규정할 권리를 지니신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방식으로 결혼을 행할 때만 결혼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조만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의 방식으로 결혼을 강행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의도를 파괴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

고유가치를 지닌 다른 모든 사물과 마찬가지로 결혼도 유용되느냐 남용되느냐에 따라 기쁨과 상심을 판가름하다. 결혼을 하나님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소중한 꿈을 실현하는 방법이다. 정해주신 양식을 위반하는 행위는 아름다움을 훼손하고 본인의 풍요로움을 약탈하는 것이다.


우리가 내리는 중요한 결정들은 종종 누군가에 대한 서약을 소리내어 말하기 전에 이미 내려져 있다.


사람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만남같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에게 사랑과 로맨스를 갈망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
태초부터 하나님은 남녀 관계를 고유한 맥락에서 결정지으셨다. 아담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라고 말씀하시고, 이에 사람의 배필을 만드셨다. 사람이 홀로 있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성취에 방해물이 된다.


이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것은, 참된 의미에서 사람은 홀로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하셨다. 아담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동반자를 느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걷고 대화하셨다. 둘의 친교는 아름다운 한 정원에 둥지를 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사람이 독처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이러한 선언은 아담의 불복종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훼손되기 전의 일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이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라고 말씀하셨을 때는 그가 설계하고 구성하신 인간의 유한함을 충족시켜 줄 인간 고유의 동반자를 이미 하나님의 마음속에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우리 개인이 인간으로 존재하는 데 필요한 필수 요소를 만드셨고, 이러한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같은 인간뿐이라는 것이다.


*
하나님은 그 분 자신이 만물의 전부시다.

완전하신 하나님께 부족한 것은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충족하시기에 충분하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만이 남자의 불완전함을 완전하게 채울 수 있도록 특수한 관계를 만드셨다.

이것은 다른 남자로는 충족되지 않는 요구를 채우기 위해 눈부시게 만들어진 여자라는 존재의 고유한 역할이다. 이야말로 하나님이 아담이라고 칭하신 존재를 완전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창조하신 놀라운 순서다.

말씀이 이러한 사실을 밝힌다. 이제 더 이상 사람이 아니고 이제는 아담과 그 아내인 것이다.

*

오늘날 일반 가정을 보면, 더 이상 결혼을 하나님의 방식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가슴앓이를 겪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들은 서로 고립되어 더욱 황무지에서 사는 것 같다.

 여자에 대한 남자의 사랑과 가정을 키우는 애정은 자기중심적 사고와 개인의 야심으로 대체되었다. 이기심의 씨앗은 가정 파탄과 고통의 가시나무를 탄생시켰다.

우리의 가정이 무너지면, 역사가 붕괴된다

-33페이지-

*

부모의 조언과 축복이 결혼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의 찬성하에 결혼하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며 반드시 진지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이상적 목표가 우리를 안내하는 깃발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상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부모들은 반드시 본인의 삶을 자녀들을 통해서 다시 살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보고, 자녀들은 불성실한 가기 정당화를 통해 부모를 모욕하지 않도록 명심하라.

두 대륙을 강력한 종교 부흥으로 이끌었던 명성 높은 존 웨슬리는 주변의 현명한 조언을 무릅쓰고 아내를 선택했다. 본인의 결혼이 완전한 실패였음은 그 자신도 증언할 수 있을 거이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양가 부모의 축복을 받는 기쁨은 마음과 영혼을 조화롭게 하고 결혼의 기쁨을 완전하게 한다는 것이다.


-37페이지-

*

하고자 하는 의지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긴 여행길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은 약하도다. 우리 시대의 격언을 하나 빌리자면, 시작을 잘하는 것은 순간의 일이지만 마무리를 잘하는 것은 평생의 일이다. 이러한 어록들이 모두 설명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우리의 지식과 우리의 반응이 서로 항상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나님이 결합하여 유지하려 하신 것들을 우리들은 분리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듯십다.

-39페이지


사랑은 감정의 문제인 만큼 의지의 문제이기도 해. 만양 누군가를 사랑하겠다는 의지가 있으면, 사랑할 수 있는 거야

-44페이지


의지가 없다면 결혼은 장난에 불과하다. 감정이 없다면 결혼은 고역이다. 의지와 감정이 모두 필요하다.

-45페이지


사랑은 정말 힘든 노동이다. 나는 더 나아가 사랑이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힘든 노동이며, 평생 단 한번도 휴가를 낼 권리가 주어지지 노동이라고 감히 단언하겠다.

-46페이지


*

사랑에서의 기사도 정신은 겉으로 보이는 달콤함과는 무관하다 그것은 섬기겠다는 각오를 지닌 마음의 다정함과 관련 있다.


당신의 행동은 매력의 충동에 이끌리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누군가의 일생을 기쁨으로 만들겠다는 헌신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성 관계에 있어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이유는 문화적으로 주입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섬기기보다 섬김 받기를 택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섬기기 위해 오셨다. 이것은 예수님이 인간에게 주신 섬김이 우리가 그 희생을 받을 자격이 가장 부족할 때임에도 불구하고 주셨다는 의미다. 일시적 감정을 초월한 섬김에는 기쁨이 있다.


심장의 떨림 속지 마라. 사랑이라는 약속은 영성의 가장 취약한 분야에서 시엄 받고, 당신으로 하여금 어려운 결정들을 내기레 강요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헌신은 매우 어려운 결정들을 내리게 강요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헌신은 당신이 스스로의 정욕,탐욕,오만,능력,지배욕,성질,성경에 명시되어 있는 모든 종류의 유혹에 대처할 것을 요구한다. 사랑은 예수님이 인간과의 관계에서 보여주신 수준의 헌신을 요구한다.

*

연애의 감정을 갖고 있다고 해서 결혼 같은 결정을 혼자 내리지 말라. 목사님의 지혜나 부모님의 지혜나 친구들의 지혜를 빌리고 연애 감정이 당신에 대한, 그리고 당신에 의한 강력한 의지와 일정한 수준의 헌신으로 초월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라. 꼭 기억해야 할 점은 결혼은 결정하기 이전에 본인 자신에게 생명을 버릴 의지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바로 이 사람을 위해 매일 목숨을 버릴 의지가 있는가? 나는 모든다른 사람들을 거절하고 바로 이 사람에게만 결혼의 서약을 할 용의가 있는가? 결혼의 대가로 당신의 모든 것을 바쳐야 하다는 사실은 의심하지 않아도 좋다.

*

결혼으로 인해 당신들이 앞으로 변화하고 희생할 일들은 단지 이름뿐만 아니라 본인들의 존재 그 자체를 바꾸게 된다.

결혼하면서 서로를 위해 변화하기 위해 두 사람의 감정과 사고의 일부에 각기 상대방이 자리잡게 된다. 그가 죽으면 홀로 남은 고독감을 견디고 당신의 영혼에 그의 일부분을 영원히 가진 채로 평생 다른 사람을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이 과정을 과연 다시 처음부터 반복하고 싶을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 왜냐하면 매우 단기간에 당신의 아주 큰 부분을 주게 되기 때문이다.

*

넘지 말아야 할 선은 행동의 단계에서 긋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단계에서 긋는 것이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실천의 단계가 아니라 갈망의 단계에서 그어야 한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접촉의 단계가 아니라 보는 단계에서 그어야 한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은 결혼이란 단순히 존재하는 상태가 아니라 만들어지는 상태라는 사실을 알면서 그어야 한다. 둘이 하나로 되지만, 그 하나됨은 하나의 순간인 동시에 과정이다.

*

사랑은 감정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계명이다.

*

결혼이란 하나님의 의지로 두 개의 의지를 동화시키는 하나님의 조화 작용이다.


두 개의 의지 중 하나라도 하나님의 의지로부터 이탈할 때 결혼은 깨진다.

*

당신의 의지가 하나님께 헌신되어 있을 때, 다른 모든 것들이 소진된 듯 보일 때, 하나님은 당신을 들고 옮기시며 당신이 헌신하여 투자한 것들을 구해 주신다.


두 생명이 만났을 때 , 이들은 두개의 벽과 같다. 이들은 각각 한번에 벽돌 한 개씩 자신의 벽을 해체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하고 그런 다음 원형 상태의 벽돌과 기타 자재를 이용하여 두 사람이 올라설 수 있는 지붕 있는 건물을 지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가정이다.

*

극작가 손튼 와일더의 말


" 내가 당신과 결혼한 이유는 당신이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내가 당신과 결혼한 이유는 심지어 내가 당신을 사랑해서도 아닙니다. 내가 당신과 결혼한 이유는 당신이 나에게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그 약속이 당신의 부족함을 채웁니다. 그리고 내가 당신에게 한 약속이 나의 부족함을 채웁니다. 불완전한 두 사람이 결혼을 하였고 이 결혼을 만든 것은 바로 그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자녀가 성장할 때, 이들을 보호한 것은 집도 아니었고, 우리들의 사랑도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을 보호한 것은 바로 그 약속이었습니다.


-하고자 하는 의지-

*

부부 간의 친절함은 상쾌하다.


불친절함은 사랑의 심장에 구멍을 내어 출혈로 죽게 할 수 있다.


모든 인간관계에는 "취급주의! 깨지기 쉬움"이라는 딱지를 붙여야 한다.

*

사랑에 생명을 더하는 행위_마음과 손


이 이야기의 주제는 두가지가 반복된다


첫째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언약의 조건인 헤세드, 혹은 인자함에 대한 주제다. 헤세드는 하나님이 주시는 분수 넘치는 관대한 호의를 말한다. 헤세드는 온유함 사랑이며 사랑의 객체에게 항상 다가가려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손을 내미셨을 때 아브라함이 경험했던 보호이며, 이러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다른 이들을 섬기게 했다.


사람으로 하여금 이를 표현하는 자신에게 어떠한 이득이 있을지 여부를 상관하지 않고 타인의 이익을 위하여 행동하게 하는 기질... 이러한 기질은 기본적으로 말이나 감정보다 행동으로 표현된다.


사랑을 의미하는 단어가 그리스어에는 4가지가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순수한 사랑인 아가페 우정의 사랑인 필레오 보호적인 사랑이자 아이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특히 대표하는 스톨게 연인의 사랑인 에로스가 있다. 결혼은 이 네 가지 사랑이 모두 결합되는 유일한 관계다. 그러나 이것도 모두 인자함 곧 헤세드라고 히브리어로 구약성서에 명시된 단어에서 비롯되어야 하는 것이다. 헤세드는 역사적 기억과 공동체적 희망으로 점철된 문화적인 단어이다. 이 헤세드적 사랑이 우리를 현재까지 살아오게 했고 앞으로도 이끌어 줄 것이다.


이삭과 리브가는 헤세드,곧 인자함을 경험했고, 이제 만남으로서 이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성경에는 이들의 만남이 너무나 간단하고도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과 사랑하였으니" 여기에서 일이 이루어진 순서가 재미있다. 이삭이 리브가를 사랑하여 아내가 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인데, 그 대신 성경은 이렇게 묘사한다. "아내를 삼고 사랑하였으니."


둘째는 친절함이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지속하다 보면 둘 중 한명이 "기분이 매우 우울한데, 당신에게 왜 우울한지도 정말 설명하기가 어려워, 지금은 그냥 사랑받는 것이 필요해"라고 말하게 되는 때가 있다. 이런 때는 아무리 많은 대화나 설명이나 이 상황에 대한 해결책도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겨 사랑받고 소중한 존재라는 느낌을 누리는 것에 비견될 바가 아니다. 이런 종류의 친절함이야말로 십 리를 걸을 수 있게 하는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신 파트너가 당신에게 몇 리를 같이 동행해 달라고 요청했는지 모르겠지만, 상황이 어려울 때 당신이 추가로 동행해야 할 거리는 항상 존재하니 의심치 말라.


만약 지금 교제하고 있는 남자에게서 친절함이 보이지 않는다면, 조심하라! 왜냐하면 당신이 찾고 있는 동반자 관계는 거만하거나 오만하지 않은 친절한 사랑을 기반으로만 영양분을 받고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남편과 아내로 맞이하기

-남녀가 구별된 이유


신성한 결혼을 위한 두 개의 실마리, 부모의 조언과 친절함이 가미된 의지의 헌신은 올바른 결혼 판단을 하기 위한 우리들의 인간적 문화적 지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아는 지식을 총동원하더라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제한되어 있다. 우리가 아무리 철저하게 하더라도 우리들이 내리는 판단은 종종 밖으로 드러난 모습에 치중한다는 점은 성경은 일깨워 준다.


결혼에 자신을 바칠 때 미혼의 독신 남져가 서로의 파트너에게 줄 수 있는 선물 중 순결보다 성스러운 것은 거의 없다. 전세계적인 문화의 동향이나 성관계를 자연스럽게 허용하는 분위기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이 교훈을 얻는 것은 이미 실수를 저지른 다음이다. 더 나아가 성적 순결이 원시적인 주장에 불과하며 종교가 사람들의 양심에 호소하여 죄책감을 조장하고 종교 집단을 통한 개인의 도덕성을 통제하려 한다고 보는 경향마저 증가하고 있다.


성은 하나님이 구체적 목적을 갖고 만드시고 계획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여자를 만드실 때 여자만의 고유한 특권과 특성을 지니고 남자와 접촉할 수 있도록 만드셨으며 남자 역시 마찬가지로 그렇게 만드셨다는 사실에 주목한 바 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똑같게 만드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남자와 동등하지만 심리적이나 생물학적으로 남자와 차이가 있고 구별되는 여자를 만드셨다. 이러한 구별은 영적으로 뒷받침되어 있다. 이 점이 바로 성문제에 대해 맹렬한 주장을 하는 일반 사람들이 줄곧 망각하는 부분이다.영혼과의 조화를 위해 육신이 필요하도록 하셨다.

하나님 자신도 이런 형태의 관계에는 참여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이유는 우리의 육체적 형태 안에서 영적으로 연결된 육체적 접촉은 인간관계에만 부여된 고유한 특성이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육체적 영역에서 영적인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의 다양성을 하나로 결속시키기 위해 공유할 배경과 목적을 주심을 볼 수 있다. 이 결속은 사랑보다 위대하다. 남녀의 다양성은 문화적 요소가 아니고 기호에 따라 결정되지도 않으며, 하나의 기준이다.

출애굽기 25장 초반의 설명을 참조하면 모세는 성막을 짓기 위한 구체적인 지시를 받게 된다. 하나님은 색상 폭 부피 수 갈고리 막 특정한 모든 것들을 일일히 지시해준다. 모든 것이 꼼꼼하고 구체적이다. 심지어 똑같이 출애굽기에 반복되기까지 한다. 이게 어찌된 일일까?

그 해답은 만약 대충 읽었다면 쉽게 지나쳤을 의미심장한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짓되, 네게 말하는 대로 지으라. 그곳에서 너를 만날 것이고, 너희들과 함께 거하리라. 여기에는 이중의 강조가 되어 있다. 성막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될 것이며, 주님과의 친교 장소가 될 것이다.

우리가 교회에 올 때 우리는 성역에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의 성역을 가지고 오는 것이다. 이러한 개별적인 존재가 바로 하나님과 나 사이의 언약의 장소이다. 이곳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회합하신다. 이곳에 하나님이 깃드신다. 성막과 성전을 물리적으로 꾸미시기 위해 갖은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이 인간의 육체를 물리적으로 설계하시는데 그만한 노력을 하지 않으셨을까?

*

예배실 제단 위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인 홀먼 홀트의 세상의 빛이 걸려 있었다.

많은 이들은 이 그림을 보았지만 이를 연구한 사람은 별로 없다. 손에 등을 든 예수님이 문 옆에 서 있는 그림이다. 이 문에는 문고리가 달려 있지 않고 이 문을 향하는 길은 무성한 잡초로 덮여 있다. 이 그림은 요한계시록 3:20 말씀을 토대로 하고 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문을 두드리는 예수님은 문 안쪽에 누가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고 그곳에 있는 사람이 들여 보내 주기만 한다면 친분을 맺고 싶다는 염원이 가득한 표정이며, 그림을 보는 이들에게 신비한 인상을 남긴다.  등불은 양심을 상징한다. 부드럽게 밝혀진 주님의 얼굴에서 발산되는 광채는 묘사하기조차 어렵다. 주님의 존재 그 자체로부터 나오는 듯한 광채다. 양심이 바로 접점이며, 주님의 존재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밝혀 주는 내재된 빛이다.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의 갈등을 아시는 주님이 문을 두드린다. 그분은 선악의 전투에서 우리들을 제약하는 약점들을 알고 계시고, 살아가는 새로운 관점. 새로운 힘, 새로운 길을 제시하기 위해 오신다. 이길은 순결에 고결한 가치를 부여한다. 불경한 언어와 폭력적인 놀이를 일삼는 세대가 인간의 육체를 신성하게 대하고자 하는 이들을 조소하고 업신여기는 것이 놀랍기나 한가?

성적 음란함은 십계명에서도 금하고 있는데, 이는 십계명이 살인을 금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

한 사람의 성적인 삶이 고결해지거나 수치스러워지는 데에 따라 그의 예배도 진실해지거나 불순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조만간 대다수의 사람들은 내부적으로 도덕을 범한 비용을 치르게 되며, 외부적 결과도 곧 드러나게 된다.


*유혹에서 벗어나는 법

적이 처음 취하는 행동은 유혹이 마치 자연스러운 욕망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1.

눈을 매혹시켜 존재의 본질을 상실하고 존재의 껍데기에 집착하도록 하는 것이다 세상을 계속 가질 수는 없다. 세상 모든 것은 일시적인 것이며 당신이 세상을 가지려고 할수록 실제로는 세상이 당신을 가진다.

유혹은 우리의 눈과 상상력에 존재한다. 눈으로 보나 인지하지 못하고, 상상력을 즐기나 깨닫지 못한다. 젊은이들에 대한 나의 최선의 충고는 눈을 훈련시키라는 조언이다.


빌리그레이엄의 친구 목회자의 얘기이다. 집회에서 돌아가는 길에 맞닥뜨린 밤의 유혹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것이었다고 한다. 자신이 파멸을 선택할까봐 너무 두려운 나머지 결국 그는 안에서 자물쇠로 방을 잠근후 열쇠를 창밖으로 던졌다고 한다.

이 작은 일화에는 두가지 면이 있다. 첫째 바로 눈을 유혹하는 힘이다. 둘째는 바로 눈앞에서 유혹을 제거해 버리는 선택이다. 그의 눈이 그를 실족해 하자 눈을 빼내어 버린 것이다.

아침이 오면 밝은 햇빛이 떠올라 전날 밤 화려한 네온 불빛의 허구를 드러내고 내면의 깨끗한 마음을 비출 것이다. 그 친구가 다음날 아침에 상쾌한 기분이었을 것은 내가 장담할 수 있다.

2

유혹의 둘째 단계인 접촉이다. 우리가 관계를 대수롭지 않은 것, 비속적인 것으로 전락시킬 때 그 관계의 강도는 시험대에 오른다. 이성과 어떻게 접촉하는지가 남녀의 상황이 어디로 어떻게 발전되는지를 정하는 주요 요소이다. 이것은 우리가 갖고 놀기 위한 것이 아니다. 특히 두 사람이 있는 시간을 조심하라.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다시 말해 당신이 무너질 수 있는 장소에 스스로를 허용하지 말라.


궁극적 순결은 부정의 상태가 아니라 긍정의 상태다. 이것은 부재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다. 하나님의 즉각적 존재는 성전의 중개성을 초월한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이 모든 곳에 항상 존재하실 것이기에 언젠가는 심지어 육신조차도 벗어 버리게 될 것이다. 그날이 오기를 고대하며, 결혼의 약속에서 육신 자체를 넘어 하나님의 존재 그 자체를 향할 수 있도록 육신의 성전을 순결하게 하자.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성적인 행위는 육체적이지만, 결혼의 잠자리는 더럽히지 않도록 일깨우시는 이유다.

하나님의 존재가 부부행위를 성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남자와 여자가 영적인 결속을 대표하여 육체적 사랑을 완성하는 둘만의 은혜이다.

이삭과 리브가의 경우 이것은 지킬 가치가 있는 약속이다.


*

5장 떠날 채비를 하다. 중에서


부모님의 조언을 구하는 젊은이가 부모의 지례를 존중해야 하듯이 부모들 역시 스스로 자발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자녀에게 자신들의 결정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한 성경의 계명은 문화를 초월한다. 젊은 남녀가 서로에게 스스로를 구속할 때 이들은 출생으로 말미암은 존재하는 책임을 떠나 계약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는 새로운 책임을 택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마음과 의지를 준비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이러한 종류의 결정은 순간적으로 내려지는 것이 아니다. 충분히 기도하고 인격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결혼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릴 때, 하나님이 미리 예비하고 계시는 뜻을 민감하게 알아챌 수 있도록 사전에 준비가 완료되는 것이다. 우리는 준비된 인생의 결실만을 본다. 이러한 결실이 가능했던 근원에 대해서는 공부하지 않는다.


*결혼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체크할 3가지


1.스스로 준비되기-앞에 놓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스스로의 이기심을 희생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이 진정으로 성숙했는지 여부를 자문하라.


당신이 그렇게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을 위해서 이 정도의 이타심을 지닐 만큼 스스로 성숙해졌는지 여부를 충분하게 공들여 생각해 보라. 당신이 즐기는 사랑은 당신에게 생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일이겠지만 그 대가로 당신의 독립성을 포기해야 한다.

당신의 독립성을 포기한다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우선 당신이 하는 노동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한 수단이지만, 당신의 일이 결코 당신의 삶과 동일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여러가지 가정 파탄 사례를 보면, 일할 시간과 일을 떠날 시간을 이해하고 실천하지 못해서 그런 경우가 많다.


2. 공동체 속에서 준비하기- 가능한 최고의 혼전 상담을 받는 것이다.

예배의 참여자가 되어야지 TV앞에서 예배를 드리는 예배의 관람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예배하는 공동체는 생명이 흐르는 샘이자 당신의 노력이 모두 융합되는 대해 여야 한다.


3.의견차이에 대비하기

-상대방의 짜증나는 버릇은 떨어져 있을 때는 참을 수 있지만 같은 지붕 아래 살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결혼에서의 갈등 해소와 평범한 우정에서의 갈등 해소가 다른 이유는 바로 당신이 결혼하는 대상이 배우자 한 사람뿐만 아니라 그 배우자의 사랑과 인간관계도 포함한다는 점에 있다. 누구도 다른 약속과 헌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는다.

젊은 남녀는 각자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서 고유한 특성을 이해하며 자신의 부모와 연결되어 있지만, 새로운 배우자에게는 이러한 이해가 없다. 이 문제를 객관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 불충분하다. 왜냐하면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이해한다 해도 완전하 객관성이란 사실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관계에서는 도적적 책임이 걸려 있는데, 이 모든 관계들은 합하면, 단순히 두 사람의 삶이 하나되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보다 많은 삶들이 하나로 모이며, 결혼하는 당자사들이 바로 접촉의 첨단이 된다.

갈등 해소가 대부분 결혼의 성패를 좌우한다.

모든 갈등 뒤에는 하나의 근본적인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 이유가 해당 문제 때문인가 아니면 기질 때문인가? 기질이란 종종 자존심의 문제일 경우가 많다. 자존심 때문에 어떤 해결책을 요구하게 되면 미래의 불만의 씨를 뿌리게 되고, 상대방의 자존심이 꺽이는 것 역시 해결책이라고 볼 수 없다. 어떤 유명한 목회자의 말이다. "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수치감 없이 겸허하게 하고 우쭐함 없이 칭찬하는 법을 알고 계신다." 만약 하나님의 처리 방식이 그러하시다면, 우리도 그 같은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힘을 구해야 하지 않을까?

*

준비되기=기다리기


주님이 오시는 광경을 어렴풋이 조금이라도 볼 수 있는 영광을 허락하여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자. 주님은 신부를 찾아오는 신랑이요, 주님을 위한 신부의 준비가 끝났을 때 오실 것이다. 만약 결혼이 성경에서 본래 뜻한 바처럼 웅대한 것이라면, 당신이 최고의 순간과 최고의 파트너를 위해 준비될 때까지 기다릴 가치가 있는 것이다.

*

6장 첫만남,최종시험


나는 첫 만남의 순간을 되새기지 않는 낭만주의자를 본 적 없다. 내가 아내를 처음 만난 장소와 시간, 우리가 처음 했던 말들을 다 기억한다. 도대체 몇 번이나 질문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첫 눈에 반한 사랑이었나요?" 불가능한 것을 묻는 이 질문은 유감스럽다. 모든 것을 알게 되고, 느낄 수 있고, 헌신된 지금, 과거를 회상하면 처음 만날 당시에 느꼈던 감정을 어찌 감히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다만 우리의 첫 만남 때 나는 진정으로 내면에서부터 강한 이끌림을 느꼈다고는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이끌림은 단순한 외모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 사람 자체가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랑하고 섬기고자 하는 진실한 갈망으로 성장하고 피어났다.


.

.

.

리브가의 눈에 차츰 걷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남자의 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히브리 학자들은 문장에서 사용된 단어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 확신이 없지만, 이삭이 기도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실제로 만약 누군가에게 일생의 반려자를 찾는 임무를 주어 보냈다면 나라도 역시 매일 매일을 기도로 보냈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성경에는 이들의 첫 만남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이삭과 리브가의 첫째 주제는 인자함이다.

두번째 주제는 바로 지속적인 기도이다. 이야기 전체가 기도로 넘쳐나고 있다. 엘리에셀은 그의 임무에 착수하면서 기도했고, 목적지에 다가가면서 기도했으며, 집으로 돌아오면서 다시 기도했다. 이제, 리브가가 이삭의 모습을 처음 본 순간에 그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는 기도하고 있었다.

결혼은 기대했던 것과 다르다는 냉소 섞인 비웃음을 종종 주변에서 듣게 된다. 그렇다면 묻겠다. 그럼 본래 결혼에서 기대했던 것은 무엇인가? 신성한 믿음의 마음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 주님의 인자하심을 경험한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약속하고 주님의 축복을 구하는 것이 아닌가? 만약 이것이 결혼이라면, 결혼은 영광스러운 관계인 것이다.

*

첫인상과 첫행동


살면서 진정으로 기도하고 삶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자가 하나님의 통치를 지각하고 일생의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하나님의 지혜를 열심히 구하게 될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나님을 영예롭게 하는 것은 인격을 만드는 기도 생활이지 결코 기도를 자신의 영성을 과시하거나 자격증이나 명예 훈장처럼 자랑하는 것은 아니다.


친절함 순결함 기질 등과 같은 것을 삶에 적용하는 것은 기도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당신의 하루가 하나님께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하루가 되어 당신의 헌신에 대가를 다른 이들이 함께 누리도록 하라. 당신의 마음의 생각과 뜻이 주님의 존재 안에서 보낸 시간으로 말미암아 형상을 갖추고 이끌어지도록 하라. 다윗은 자신이 얼마나 낙담하거나 두려워하는지 자주 언급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표현을 쓰곤 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은 모든 다른 관계를 좋은 방향으로 개선시킨다. 자신의 남편 첫 모습이 기도하는 모습이었다는 사실은 당연히 리브가에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당신은 기도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깊이 헌신하여, 하나님이 당신에게 일생의 반려자를 보여주시고 당신을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만드시게 할 용의가 있는가?

이삭과 리브가에게 있어 이들의 첫 만남은 매우 상서로웠다. 첫 만남에서 가정과 국가가 만들어졌다. 그녀는 자신의 전부를 그에게 주었고 동시에 그는 자신의 전부를 그녀에게 주었다. 몇 년전 리더스 다이제스트지에서 결혼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글을 읽었다.


결혼이란 본인의 전부 곧 본인의 육체 영혼 행복 미래를 당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관하여 맡기는 것이다. 이러한 엄청난 신뢰의 행동은 연인들에게 아무도 추측하지 못했던 동정심 인내심 관대함 즐거움 열정 성실함과 희망의 열쇠를 열게 한다. 이 때문에 젊은 연인들의 자신감은 교만함이나 어리석음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대한 근본적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재능 중 가장 위대한 재능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걸고 모험할 때만 발휘된다.


그러나 당신이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해 모험한 후에야 이러한 모험을 하게 된다.

*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의 배우자보다 더 낫거나 혹은 더 잘 통하는 사람이 있었을텐데라는 식의 생각은 장난으로라도 피하란 점이다. 불성실함은 육체적인 것만은 아니다. 마음의 변덕스러운 감정도 똑같이 결혼 생활의 건강에 적신호를 초래할 수 있다.


외도가 발생하는 이유는 종종 부부 중 한 사람이 배우자보다 더 잘 통하는 사람 곧 가정의 모든 부담으로부터 자유롭게 많은 친밀감과 온기를 고유할 사람을 찾았을 때다. 오래도록 가정을 유지했던 결혼 생활들이 깨지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반평생 동안 서로 나누었던 상대방의 근심이 너무나 무거워져서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가 바로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사랑과 결혼의 본질에 대해 깨달아야 할 순간이기도 하다.

세상 밖에는 더 나은 사람이 양팔을 벌리고 나에게 완벽한 행복을 가져다 주려고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발상 단계에서부터 지워 버려라.

배우자의 삶에 몰입하면 할수록 사는 "고통"은 더욱 커진다. 그것이 바로 세상의  이치다. 배우자의 삶에 참여하면 할수록 희생의 요구 역시 커진다. 우리들은 응석부리고 기분이 좋아지라고 지금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 밖에 완벽한 상대란 존재하지 않으며 '더 나은' 이라는 표현 역시 크게 오용될 수 있다.


모든 관계와 모든 화해의 열쇠는 각 당사자가 상대방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자 하는 의지 여부에 있다. 우리는 절름댈지언정 올바른 방향을 향한다. 나이나 질병으로 허약할지언정 하나님의 형체가 극히 희미하게라도 반사된 모습을 보면 황홀할 것이다.


결혼은 하나님에게 헌신된 두 사람을 대면시킨다.

매일 당신 앞에 있는 얼굴을 열심히 보면, 주님의 은총의 빛 안에서 그 소중한 얼굴이 반영된 것을 볼 수 있다. 각각의 특징은 고유하지만 당신들 둘에게는 공통의 설계도가 있다. 상대방에게 주어진 특성에 따라 그리고 당신에게 주어진 신뢰에 따라 아름다움이든 연약함이든 보라. 그럴 경우 순수한 사랑과 신뢰의 포옹이 이루어진다. 상대방의 부탁에 등을 돌리지 말라. 당신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하나님의 얼굴을 볼 때, 당신의 가정과 역사는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것이 우리의 기쁨이자 희망이 되기를 기원한다.



그리스도 중심의 결혼은 보기에 아름답고 행하기에 멋지다.

하나님이 뜻하신 모습 그대로의 로맨스는 평생토록 계속될 수 있다.

-----------------------------------------------------------------------------------------------
책에 대한 감상평과 목차 등등

결혼에 대해 고민이 있었다.

결혼이란 그냥 하면 되는게 아닌거 같았다.

언젠가는 할거라고 생각했고 생각하고 있기에

준비가 필요한게 아닐까 생각했다


기억에 남는 부분은

부부사이에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인자함과 친절함이라는 걸 알았다.

친절함...어떻게 해야하는거지.

사람들은 흔히 편해지면 친절함을 잊고 산다.


그리고 리브가가 이삭에게 반했던건 그들의 첫만남에서 이삭은 기도하고 있었다.


그래 기도하는 사람을 만나야겠다.

인격의 완성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얻어지는 것이라고 이책은 말한다.

또 한가지 마음이 넓은 사람을 만나야겠다.

난 잼있기는 하나 나의 부분을 이해하려면 마음이 넓고 포용력이 있는 사람을 만나야겠다.

이제것 보던 조건 외모 등등등을 안보기로 마음먹다.

설레임이 생긴다면 나 좋다고 한다면 감사하게 만나야겠다.

비젼도 외모도 조건도 변하는 것이지만 하나님께 순종하고 마음이 넓은 사람이라면 의지할 만하다고 생각이 든다.


일단 내가 좋아지고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쁨이되는

배우자에 있어 기쁨이 중요한지 몰랐었으나

라라라고 명하리라고 했던 이사야서의 말씀처럼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백성이 되듯 남편에게 기쁨이 되는 아내가 되도록 준비해야겠다는 것....

인간이 되어야 겠다는 것 등을 요즘 깨닫는 거 같다.

그리고 결혼이나 연애문제는 내가 설쳐서 될게 절대 아니란 거...


하여튼 이삭과 리브가 결혼시키기 이책의 전체 이름은

최고이 커플매니저 이삭과 리브가 결혼시키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단점을 품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믿음 좋았으나 다윗의 사랑은 처음의 매력만 발견하고 지속적으로 배우자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랑이었다 그로 인해 극심한 고생을 하며 나라까지 분열된다. 성적 타락은 우상숭배의 의미이다. 결국 솔로몬 세대에는 우상이 넘친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 같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니 짝이다...그 정도면 너희 정말 잘 어울려 라고 인정 받는 그런 사람을 만났음 좋겠다. 여호수아처럼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그런 사람.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보다!

결혼을 하나님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소중한 꿈을 실현하는 방법이다.
하나님이 어떠한 생각으로 우리들에게 결혼 서약을 명했는지
본질적인 이유를 주시는 성경 말씀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전 세계를 품고 강연하는 저명한 연사이자 기독교 변증학자인 래비 재커라이어스 박사는 이 책을 통해 문화를 초월하여 성경의 관점에 근거한 결혼을 정의한다.
모든 문화에는 결혼 제도가 있다. 그러나 각 문화는 그들만의 특성 속에서 다양한 결혼 제도를 고안해 내고 이를 발전시켜 왔다. 이로 인해 결혼을 단순한 하나의 문화로 보는 시각이 팽배해졌으며 인간적인 이해와 생각들로 결혼을 해석하는 풍토가 만연해지고 있다. 값비싼 혼수비용, 필수 경제적 조건, 외모 등 우리나라도 점점 변해가는 결혼문화를 직면하고 있는데, 저자는 그러한 사실들을 꼬집으며 문화적 차원이 아닌 하나님의 시각에서 결혼을 정의한다. 특별히 성경의 인물 중 이삭과 리브가의 만남에 근거한 해석은 결혼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눈을 열어준다.
결혼이란 제도에 눈이 멀어 보아야 할 것들을 보지 못하고, 순간의 로맨스에 휘둘려 그릇된 판단을 하기 쉬울 때 이 책은 통찰력 있는 안내서가 되어 줄 것이다.

특징
- 순간의 로맨스와 그 이상의 사랑이 어떻게 다른지 성경적으로 고찰한다.
- 배우자의 선택 시 부모와 그 주변인의 조언이 왜 필요한지를 실질적으로 말한다.
- 결혼에 있어 ‘성’이 차지하는 위치와 중요함을 말하고, 왜 결혼 전에 ‘성’을 지켜야 하는지 다양한 실례와 타당한 근거를 제시한다.
- 결혼생활에서 빚어지는 갈등에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려준다.

대상 독자
- 순간의 로맨스가 아닌 영원한 사랑을 꿈꾸고 가꾸어 나가고자 하는 이들
- 자신이 속한 문화의 틀을 벗어나 결혼에 관한 하나님의 시각과 섭리를 발견하고자 하는 이들
- 이성교제나 결혼결정을 앞두고 머뭇거리고 있는 이들
- 이성교제 시 성(性) 문제로 인해 고민하고 있는 이들
- 지혜롭고 분별력 있는 이성교제와 결혼생활을 하고자 하는 이들
목차
1. 사랑의 필수 불가결 요소 남성의 매력은 힘이며 여성의 힘은 매력이다.
2. 하고자 하는 의지 의지를 부활시키고자 한다면 먼저 십자가에 의지를 못 박아야 한다.
3. 사랑에 생명을 주는 행위 친절함을 투자 밑천으로 얻는 이익은 인격이다.
4. 남편과 아내로 맞이하기 영적 진실을 상실한 성적 즐거움은 양쪽 모두를 파괴한다.
5. 떠날 채비를 하다 중대한 결정은 오래 생각한 뒤에 내리는 것이 가장 좋다.
6. 첫만남, 최종 시험 사람이 몸을 낮추었을 때 가장 위대해진다.
7. 현실과 서로를 대면하기 인생에 딸린 짐은 하나님이 들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본문중에서
결혼은 놀라운 관계다. 결혼은 감히 휴가를 낼 수 없는 임무이다. 결혼은 양육과 정성을 필요로 하며, 연약한 새싹과 마찬가지로 정성을 들일수록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하지만 확실히 매우 힘든 노동이기도 하다.
다양한 문화들은 각기 다른 시각에서 결혼을 본다. 만약 우리가 조심하지 않는다면 결혼이란 각 문화의 틀 안에서 사회가 고안한 제도이니, 우리가 원하는 대로 처리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보다 사실에 반하는 것은 없다. 결혼은 하나님의 생각이고, 오직 하나님만이 결혼의 본 의미를 규정할 권리를 지니신다. 나는 이 책에서 하나님이 결혼에 대해 뜻하신 바를 성경에 주신 말씀대로 소개하려고 노력했다. 우리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방식으로 결혼을 행할 때만 결혼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조만간 깨닫게 될 것이다. 반대로 우리의 방식으로 결혼을 강행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의도를 파괴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주인을 대신하여 주인 아들의 신부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난 종의 여행을 나와 함께 떠나보자. 이 여행길에서 우리는 “나는 당신을 남편으로 맞이하여” 또는 “나는 당신을 아내로 맞이하여” 라는 서약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맞이한다”는 단어가 진정으로 의미하는 것은 주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결혼 서약의 진정한 의미와 이로 말미암은 참된 행복을 이해하는 것이다.







Posted by 7차원